동물이 나오는 꿈 — 용·뱀·말·소·호랑이를 옛사람은 어떻게 봤나
꿈에 짐승이 나오면 우리는 먼저 "무서웠나, 좋았나"를 따집니다. 그런데 周公解夢으로 불리는 옛 해몽서를 펼쳐 보면, 옛사람들의 관심은 우리와 사뭇 다른 데 가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검수본의 동물 항목을 가로질러 읽어 보면, 용·뱀·말·소·호랑이가 가리키는 곳은 거의 한결같이 벼슬과 재물,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의 내 자리입니다. 이 글은 동물 하나하나의 길흉을 외우는 대신, 옛사람들이 짐승의 모습을 빌려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 그 풀이에 비친 옛 세계의 결을 따라가 봅니다. 어디까지나 옛 글의 기록을 전하는 재미와 참고를 위한 읽을거리이니, 앞일을 점치는 단정으로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권합니다.
짐승이 아니라 '벼슬'을 말하고 있었다
가장 또렷한 결은 용에서 드러납니다. 검수본의 龍飛有官位大貴는 "용이 날면 관직을 얻고 크게 귀해진다", 乘龍上天大主貴는 "용을 타고 하늘에 오르면 크게 귀해진다"고 풀이합니다. 두 구절 모두 용의 비상을 곧장 벼슬길로 옮겨 읽습니다. 반대편 항목도 마찬가지여서, 용이 우물 속으로 드는 龍入井中官被辱은 "벼슬이 욕을 당한다", 용이 죽는 龍死亡主失貴位는 "귀한 지위를 잃는다"고 봅니다. 용이 등장하는 꿈의 결말은 재물도 사랑도 아닌, 거의 언제나 관직의 오르내림이었던 셈입니다.
호랑이도 다르지 않습니다. 호랑이를 베는 殺虎豹主得重印은 "중요한 인장을 얻는다"고 풀이하는데, 인장(印)은 곧 관직과 권한의 표식이었습니다. 호랑이가 집으로 드는 虎入宅中官職重은 "관직이 무거워진다", 사나운 짐승이 잠잠한 虎狼不動見官吉은 "관(리)을 만나는 일이 길하다"고 봅니다. 맹수의 위세를 두려움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권위로 환산한 것이지요. 옛사람들에게 호랑이 꿈은 '무섭다'가 아니라 '얼마나 무거운 자리를 마주하게 되는가'의 물음이었던 셈입니다.
왜 하필 출세였을까 — 꿈을 적은 사람들의 세계
이쯤 되면 의문이 듭니다. 어째서 이토록 많은 짐승이 벼슬로 귀결될까요. 답의 실마리는 이 책을 읽고 베껴 쓰던 사람들의 처지에 있습니다. 글을 익혀 과거를 보고 관직에 나아가는 일이 한 사람과 그 집안의 운명을 가르던 세계에서, '잘 풀린 삶'이란 곧 벼슬길에 오르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니 밤새 본 용과 호랑이 같은 위엄 있는 짐승을 가장 간절한 소망 — 입신과 출세 — 의 언어로 옮겨 읽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동물 항목은 옛 해몽서가 점지한 운수표이기 이전에, 그 시대가 무엇을 가장 바랐는지를 비추는 거울인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같은 짐승을 두고 풀이가 갈리는 까닭도 새삼 또렷해집니다. 용은 하늘을 날 때(龍飛·乘龍上天) 더없는 길조였지만, 좁은 우물에 갇히거나(龍入井中) 숨이 끊어질 때(龍死亡)는 도리어 욕됨과 상실이 되었습니다. 같은 호랑이라도 위세를 이겨내거나 잠잠히 머물 때는 권위가 따랐지요. 옛사람들이 보려 한 것은 짐승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짐승이 놓인 자리에 비친 자기 처지의 높낮이였던 셈입니다. 위엄 있는 짐승이 위로 오르면 내 자리도 오르고, 짐승이 갇히거나 쓰러지면 내 자리도 흔들린다고 — 그렇게 짐승의 형국에 자기 삶을 포개어 읽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동물이 벼슬만을 가리킨 것은 아닙니다. 소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소가 산비탈을 오르는 牛上山坡大吉昌은 "크게 길하고 창성하다", 소를 끌고 산에 오르는 牽牛上山主富貴는 "부귀해진다", 소를 잡아 고기를 먹는 殺牛食肉主生財는 "재물이 생긴다"고 풀이합니다. 묵직하게 일하는 소가 살림과 재물의 언어였다면, 용과 호랑이는 자리와 권세의 언어였던 셈입니다. 같은 동물 항목 안에서도 짐승마다 맡은 '뜻의 자리'가 달랐던 것이지요.
말은 소식을, 색깔은 또 다른 결을
또 하나 눈여겨볼 동물은 말입니다. 말은 곧 먼 거리를 잇는 발이었던 만큼, 그 풀이도 '오고 감'과 '소식'에 닿아 있습니다. 천 리를 내달리는 馬行千里大喜至는 "큰 기쁨이 이른다"고 보아, 멀리서 다가오는 반가운 소식으로 읽습니다. 무리 지어 멀리 달리는 群馬奔遠百凶解는 "온갖 흉함이 풀린다"고 하여, 묵은 근심이 흩어져 나가는 흐름으로 풀이합니다. 짐승의 빠른 움직임에서 옛사람들은 멈춰 있던 일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미를 읽으려 했던 듯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짐승이라도 빛깔과 상태가 결을 한 번 더 가른다는 점입니다. 말의 경우 흰 말을 타는 乘白馬者主疾病은 "질병이 따른다"는 경계로, 빠르고 둔함을 가린 乘馬快吉鈍主凶은 기세의 방향을 살피라는 풀이로 전해집니다. 뱀도 그렇습니다. 검수본은 뱀의 빛깔을 두고 蛇赤黑口舌青吉, 곧 "붉거나 검으면 구설이 있고 푸르면 길하다"고 갈랐고, 뱀이 여럿 나타나는 蛇多者主陰司事는 무거운 일을 미리 살피라는 경계의 상으로 보았습니다. 짐승의 종류만이 아니라 그 빛깔과 수, 움직임의 결까지 헤아렸던 옛사람들의 세심함이 여기서 엿보입니다.
이렇게 동물 항목을 한자리에 모아 보면, 옛사람들이 짐승의 꿈에서 길어 올린 것은 결국 자기 삶이 어디쯤 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용과 호랑이로는 자리와 권세를, 소로는 살림과 재물을, 말로는 소식과 흐름을 가늠하던 사람들의 마음 말입니다. 그것은 천 년 전 어느 세계가 무엇을 귀하게 여겼는지를 고스란히 담은 풍경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때와 사뭇 다를지 몰라도, 간밤의 꿈 한 자락에 자기 처지를 비추어 보고 싶어 하는 마음만은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짐승 꿈이 마음에 오래 남으셨다면, 그 장면을 직접 해몽받기로 들려주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 풀이들은 옛 글이 전통적으로 그렇게 여겼다는 기록일 뿐, 현실의 일을 점치거나 단정하는 근거는 아니라는 점만 가볍게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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